“인공지능의 발전은 어느 한 나라의 독주가 아니라 글로벌 협력의 교향곡이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7월 17일 상하이에서 열린 2026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픈소스와 개방, 유엔 중심의 국제 규칙, 개발도상국 지원을 제안했다. 미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안보를 이유로 AI 기술의 접근을 제한해 온 미국을 향한 메시지는 연설 곳곳에 있었다. 이 발언은 미국이 중국의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반도체 제조장비 접근을 제한하고, 중국이 핵심광물 통제와 국산화로 맞선 칩 전쟁 한가운데서 나왔다.[1][17]
지금까지의 결과는 중국 AI 산업의 중단이 아니라 비용 상승과 개발 방식의 변화였다. 중국은 국산 칩, 계산 효율, 공개 가중치 모델로 버텼고, 이번 연설에서는 이를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신흥국) 시장을 겨냥한 국제협력 구상으로 넓혔다.
개방과 통제를 함께 꺼낸 중국
시진핑은 연설에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오픈소스와 협력으로 혁신을 촉진하고, 법규와 기술 모니터링으로 AI를 인간의 통제 아래 두며,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고,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 규칙과 기술 표준을 조율하자는 내용이다.[1]
개방을 말하면서 통제도 빼놓지 않았다. 시진핑은 “AI가 언제나 인간의 통제 아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분야에서 국가안보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하거나 자국의 안전을 다른 나라의 안전보다 우위에 두는 행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첨단 GPU와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국가안보 문제로 규정해 온 미국을 가리킨 것으로 읽힌다.[1]
중국이 내놓은 실행 계획도 구체적이다. 향후 5년 동안 개발도상국에 AI 전문 연수 정원 5,000명분을 제공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랍연맹·아프리카연합(AU)·CELAC(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공동체)·상하이협력기구(SCO)·브릭스(BRICS)를 대상으로 AI 응용협력센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지능형 기상 조기경보 솔루션 ‘마쭈(妈祖)’는 30개국에 보급한다. 행사 의장성명은 상하이에 본부를 둔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 설립 협정의 서명도 알렸다.[1][2]
시진핑은 중국의 지능경제 핵심산업 규모가 1조 위안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산정 기준이나 세부 구성은 연설문에 공개하지 않았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AI 모델과 인프라, 교육을 묶어 국제 공공재로 제공하겠다는 방향이다.[1]
기업 제재에서 계산능력 봉쇄로
미중 기술 마찰은 처음부터 AI 모델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2019년 화웨이를 미 상무부 수출통제 대상 명단(Entity List)에 올렸고, 2020년에는 미국 기술을 사용해 해외에서 만든 반도체까지 허가 대상으로 묶었다. TSMC가 화웨이용 첨단 칩을 생산하기 어려워진 배경이다.[10][11]
경쟁의 단위가 기업에서 국가의 계산능력으로 바뀐 시점은 2022년이다. 미국은 527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을 담은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과시켜 자국 생산에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제공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중국의 첨단 AI 칩, 슈퍼컴퓨터, 반도체 제조장비 접근을 함께 제한했다. 엔비디아는 그보다 앞선 8월 A100과 H100의 중국 수출에 허가가 필요해졌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공시에 따르면 당시 한 분기에 최대 4억 달러의 중국 매출이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3][4][7]
엔비디아는 규제 기준 바로 아래에 맞춘 A800과 H800을 중국 시장에 내놓았다. 미국은 2023년 10월 성능밀도 기준을 추가해 이 제품들도 다시 통제 대상에 넣었다. 2024년 12월에는 24종의 제조장비와 고대역폭메모리(HBM)까지 규제를 넓히고 중국 기업 약 140곳을 명단에 추가했다. AI 가속기는 GPU만 있어서는 제 성능을 내기 어렵다. 규제는 칩 한 장에서 장비·메모리·클러스터 전체로 확장됐다.[5][6]
막지는 못했지만 더 비싸게 만들었다
수출통제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화웨이와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는 7nm급 칩을 내놓았고, 중국 정부는 국산 가속기와 제조장비에 자금을 집중했다. 다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HBM, 첨단 패키징, 수율, 그리고 CUDA(엔비디아 GPU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여전히 병목으로 남아 있다. 제한된 생산 성공과 경제성 있는 대량생산은 같은 말이 아니다.[12]
통제는 중국 기업의 개발 방식도 바꿨다. DeepSeek는 V3 기술보고서에서 엔비디아 H800 GPU 2,048개를 사용해 최종 사전학습에 278만8천 GPU 시간을 썼다고 밝혔다. 시간당 2달러를 적용한 계산비는 557만6천 달러였다. 이 수치는 데이터 구축, 이전 실험, 연구 인력, 장비 구입비를 제외한 최종 학습 계산비다. “DeepSeek를 600만 달러에 만들었다”는 설명은 편리하지만 정확하지 않다.[8]
DeepSeek가 보여준 것은 첨단 칩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제한된 칩에서도 MoE(Mixture of Experts, 전문가 혼합), 저정밀 연산, 통신 최적화와 증류를 사용하면 더 많은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통제가 중국 AI를 제거하지 못한 대신, 효율과 개방형 모델을 경쟁력으로 만드는 압력을 높인 셈이다.[8]
중국의 맞대응 카드, 희소금속
중국도 공급망을 협상 수단으로 사용했다. 2023년 갈륨과 게르마늄에 수출허가제를 도입했고, 2024년 12월에는 미국을 상대로 갈륨·게르마늄·안티모니 수출을 금지했다. 미국이 첨단 연산칩과 제조장비를 쥐었다면 중국은 희소금속과 자석 공급망을 들고 맞선 구도다.[13]
정책은 일직선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용 저사양 H20을 막았다가 다시 허가했고, 2026년에는 더 강력한 H200도 승인된 중국 고객에게 제한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7월 14일 미국 상무부 관리는 중국에 실제로 출하된 H200이 “매우 적다”고 밝혔다. 국가안보와 엔비디아의 중국 매출, 중국의 국산 칩 육성 정책이 같은 시장에서 충돌하고 있다.[9][14]
글로벌 사우스 공략
미국은 최상위 GPU, 대형 클라우드, 폐쇄형 상용 모델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저렴한 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와 공개 가중치 모델, 화웨이 통신·클라우드·가속기를 묶은 패키지로 다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자체 서버 운영과 데이터 주권을 중시하는 국가에는 내려받아 조정할 수 있는 모델이 매력적이다. 다만 공개 가중치가 학습 데이터와 전체 학습 과정까지 공개하는 완전한 오픈소스를 뜻하지는 않는다.[17]
이번 WAIC 연설의 ‘개방’은 이 경쟁에서 나온 제안이다. 중국은 미국식 수출통제를 폐쇄적 질서로 규정하고, 자국의 개방형 모델과 인프라를 글로벌 사우스에 공급하는 쪽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수출통제는 중국의 비용과 개발 난도를 높였지만 경쟁 자체를 끝내지는 못했다. 이제 승부는 가장 빠른 모델뿐 아니라 누가 더 많은 국가에 칩·클라우드·모델·표준을 한 묶음으로 제공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1][2]
미국·EU는 아직 공식 반응 없어, 유엔은 중국 구상 평가
7월 18일 현재 백악관·미국 국무부·미국 상무부와 산업안보국(BIS),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시진핑의 WAIC 연설을 직접 논평한 공식 성명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유럽대외관계청(EEAS)·주중 EU 대표단과 EU 회원국 정상 차원의 직접 반응도 확인되지 않았다.
EU의 기존 정책은 비교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번 연설에 대한 반응은 아니다. EU가 2025년 6월 채택한 국제 디지털 전략은 인권에 기초한 공동의 가치에 따라 글로벌 디지털 규칙과 표준을 만들고, 유엔 글로벌 디지털 콤팩트의 이행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국제협력과 규칙 조율에서는 시진핑 연설과 접점이 있지만, EU는 안보와 인권을 더 명시적으로 앞세운다.[16]
같은 개막식에 참석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더 직접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시진핑이 2023년 제안한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중국의 “의지와 리더십을 보여준 매우 강한 메시지”라고 부르고,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를 그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또 중국의 오픈소스 전략이 “엄청난 세계적 성공”이라고 말했다.[15]
구테흐스의 지지가 중국 중심 질서에 대한 백지위임은 아니었다. 그는 AI를 “소수의 국가나 소수의 기업이 통치해서는 안 된다”며 모든 국가가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법과 인권을 거버넌스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생사가 걸린 모든 결정에서 인간이 통제권을 유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중국의 참여를 인정하되 유엔을 규칙 제정의 중심에 두겠다는 입장이다.[15]
미국과 EU의 공식 반응이 아직 없어 이번 연설이 서방의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는 판단하기 이르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중국이 수출통제에 맞서 개방형 모델과 글로벌 사우스 지원을 외교 카드로 꺼냈고, 유엔 사무총장이 포용성과 역량 강화라는 방향에는 공개적으로 힘을 실었다는 점이다.